코로나 진료공백에 스러진 정유엽군
1주기 맞아 아버지 청와대 도보행진
“아들 죽음, 억울한 개인사 치부 안돼
공공의료 확충·공익 책임감 맞닿아”
청와대 수석실 면담요청 끝내 거부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초기 의료공백으로 아들 정유엽군을 잃은 정성재씨가 서울 중구에 마련한 숙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16일 저녁, 300㎞가 넘는 거리를 걸어 마침내 서울에 도착한 날에 아버지는 그만 울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이날 그동안 멀쩡히 열려 있었던 아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이 휴면계정으로 전환됐는지 더는 열리지 않았다.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코로나19 1차 유행이 한창이던 지난해 3월10일 아들 정유엽(당시 17살)군은 40도가 넘는 고열과 호흡곤란 증상을 일으켰다. 이틀 뒤인 12일 경북 경산중앙병원을 찾았지만 선별진료소가 문을 닫았다며 응급실 치료를 해주지 않았다. 해열제와 항생제만 처방받았다. 이튿날 오후가 되어서야 상급 종합병원으로 가라는 소견서를 받았지만, 코로나19가 의심돼 구급차 이송이 불가하다는 답을 들었다. 결국 항암 치료 때문에 저린 손으로 운전대를 붙잡은 아버지 정성재(54)씨가 직접 아들을 대구 영남대병원에 데려갔지만, 닷새 뒤인 18일 정군은 급성폐렴으로 숨졌다. “유엽이가 숨지기 약 2시간 전에 담당 의사가 유엽이에게 코로나19 양성 판정이 나왔다며 ‘세계질병학회에 보고해야 할 변종 바이러스’라고 흥분에 차 하던 말을 잊지 못해요. 그런데 사망한 뒤에 한 검사에서는 음성 판정이 나왔습니다.” 지난 1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한겨레>와 따로 만난 정씨가 말했다. 아들의 죽음 이후 1년 동안 정씨는 많은 것을 새로 알게 됐다. 지역에 공공병원이 있었다면 아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진상규명을 위해 각종 토론회에 다니면서 취약계층의 의료공백도 알게 됐다.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된 뒤 공공병원에 있던 환자들이 민간병원으로 강제 전원되면서 치료비가 감당 안 돼 치료를 포기하게 된 사연을 들은 것이다. “최소한 의료원 정도 규모의 공공병원이라면 음압병실도 구비되어 있었을 테고 열이 나는 환자도 구분해서 치료할 수 있었겠지요. 유엽이 사건을 개인의 억울한 가정사로 치부할 게 아니라 사회 공익을 위한 일과 맞닿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책임감을 갖게 됐습니다.” 그가 진상규명과 더불어 의료공공성 강화와 공공병원 확충을 요구하게 된 이유다. 하지만 정부에 수없이 호소해도 공식 답변이나 재발 방지책에 대한 답은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진정을 넣었지만 각하 통지만 받았다. 정씨가 아들의 1주기를 앞두고 지난달 22일부터 진상규명과 정부의 입장 표명, 의료공공성 강화 등을 요구하며 경북 경산중앙병원에서 서울 청와대까지 약 380㎞를 걷는 도보행진을 시작한 까닭이다. 그래서 정씨는 아들의 1주기인 18일 청와대 사랑채 앞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시민사회수석실 관계자와 면담을 통해 의견서를 전달할 계획이었다. 인터뷰에선 “(면담한다면) 가서 울기만 할 것”이라고 웃으며 “아픔을 위로하고 같이 고민하는 정부가 되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가장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정씨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은 이날 ‘일정이 안 된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이날 오후 경북 경산에서는 정군의 추모제가 열렸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0 Response to "17살 아들 영정 들고 380㎞ 걸었다, 코로나 의료공백 속 죽음 1년 - 한겨레"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