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사진은 지난 6일 인천의료원 중환자실에서 한 간호사가 유리문 너머로 코로나19 환자와 가족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격리병실을 살펴보는 모습. 오른쪽 문서는 코로나19 유족인 ㅎ씨 할아버지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폐렴’으로 사망했음을 증명하는 사망진단서. 사진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디자인 이임정 기자 imjung@hani.co.kr
▶당연한 말이지만, 철저한 방역과 의료체계가 유지돼야 하는 이유는 최대한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한 가지가 더 있다. 목숨을 잃는 사람이 고립되지 않은 채 ‘인간적인’ 죽음을 맞기 위해서도 방역·의료체계는 건재해야 한다. 코로나19는 가족 곁에서 맞는 임종, 염습, 입관식 등 일련의 장례문화 행위를 제거하고 있다. 인간은 바이러스의 침투로 균형이 깨진 ‘한 개체의 사피엔스’로서 홀로 죽어가는 당황스러운 경험을 하고 있다. ‘직접 사인: 코로나바이러스 뉴모니아(pneumonia·폐렴), 발병부터 사망까지의 기간: 17일.’ 지난 9월17일 세상을 떠난 한 코로나19 환자의 사망진단서에 기록된 내용 일부다. 그가 확진(9월1일) 판정을 받은 지 불과 보름여 만에 사망했다는 것, 이 급작스러운 죽음의 원인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폐렴’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 고인은 서울시 성북구 한 요양원에서 생활하던 중 50대 요양보호사(8월30일 확진)로부터 코로나19에 감염된 80대 환자였다. 이 요양원에서 생활한 기간은 겨우 한달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고혈압 등 만성질환이 있었지만 거동이나 의사소통에 큰 문제 없이 지내다가, 올해 초 기력 저하로 쓰러져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호전된 적이 있었다. 아내와 함께 살아왔지만 지난 3월부터는 요양병원에서 홀로 지내기 시작했다.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역시 고령인 배우자가 집에서 돌보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요양병원에서 생활한 지 5개월 만인 지난 8월, 건강이 호전되어 요양원으로 옮겨 간 것이 ‘느닷없는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요양원에서 병원으로 이송될 때 그 마음이 어떠셨을지, 돌아가실 때까지 병실에 혼자 누워 계실 때는 또 어땠을지….” 그의 손주 ㅎ(24)씨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ㅎ씨 가족은 병원(서울의료원) 보호자실에서 격리병실에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으로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비대면 임종’이었다. 격리병실 외부에서 시시티브이를 실시간으로 보는 게 작별의 방법이 될 줄은 이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난 8월 중순 ‘광화문 집회’를 기점으로 코로나19가 급격히 재확산한 이후, ㅎ씨처럼 ‘코로나 이별’을 겪은 이들도 급증했다. 16일 기준, 전체 사망자(441명) 3명 중 1명꼴로 최근 두달 사이 숨졌다. 8월15일부터 이날까지 사망자는 모두 136명이다. 수도권 확진자 가운데 고령자 비중이 높아 70대 이상 연령에 사망자가 집중됐다.
‘선 화장, 후 장례’도 ㅎ씨에게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으로는 상가나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며칠 모시며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장지로 발인하지만, 코로나19는 이 순서를 거꾸로 뒤집었다. 발인과 화장이 상례의 첫번째 순서가 된 것이다. ㅎ씨 가족은 “애도할 시간을 잃어버린” 채 낯설고 당혹스러운 이별의 시간을 겪어야 했다. 그 끝에 “자책”이 응어리졌다. 날벼락 같은 죽음이 억울하지만 탓할 대상이 없었다. “피해자인 할아버지의 감염이 그 요양보호사 잘못일까요? 그런데 그분도 누군가로부터 감염된 피해자잖아요. 그럼, 위생 수칙이 현장에서 잘 지켜지는지 감독할 의무가 있는 요양원 잘못일까요? 모르겠어요. 코로나19 앞에선 피해자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가해자가 불분명하니까, 할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시게 됐는지 저희가 알 수 있는 게 없어요. 너무 답답해요.” 수의를 입혀드리지 못한 채 화장부터 해야 했던 것도 가족들은 한탄스럽다. 방역당국은 감염 확산을 방지하고 사회불안 요인을 차단하기 위해 염을 생략하고 유족 동의를 얻어 화장을 진행한다. “(가족으로선) 이해하기 어렵지만, (시민으로선) 이해가 되는” 기막힌 상황이었다. 향할 곳 없는 “원망은 돌고 돌아, 결국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
지난 5일 서울에서 만난 ㅎ씨는 코로나19에 감염된 할아버지를 황망히 떠나보낸 유족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감염병으로 가족이 위독한 경우 나머지 가족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인터넷 검색을 아무리 해봐도 도움이 될 만한 자료가 나오지 않아 답답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저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들과 충분히 상의했어요. 특히 아버지는 ‘네가 대신 인터뷰해 달라’고 하셨어요. 아버지께서 직접 말씀하시긴 아직 심적으로 어렵지만, 저희처럼 우왕좌왕한 채 가족을 잃고 후회하는 분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요.”
9월 둘째주, ㅎ씨 아버지는 의료진에게서 임박한 임종을 알리는 연락을 받았다.
상태가 조금이라도 더 괜찮을 때, 만나뵈러 오라는 연락이었다. 총 입원 기간 17일 동안 의료진과 매일같이 연락을 주고받지는 못했다. “상황이 나빠지면 당연히 연락이 올 거잖아요. 그러니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마음이 컸죠. 그런데 또 궁금하니까 매일 연락이 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연락을 기다릴 수도, 안 기다릴 수도 없는 애타는 시간 속에서 “너무 일찍” 이별이 도착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임종 방법을 안내받았다.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개인보호구(N95 마스크, 전신보호복, 속장갑, 겉장갑, 보안경, 얼굴가림막, 덧신, 헤어캡 등)를 하고 병실에서 직접 환자를 면회하는 것. 둘째, 병실 외부에서 시시티브이 영상을 통해 환자를 지켜보는 것.(의료기관에 따라 시시티브이 참관이 불가능한 곳도 있다.) “네 고모랑 삼촌들한테 연락해줘야 되는데….” 두 선택지 앞에서 ㅎ씨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대로 얼다시피 한 아버지를 대신해 ㅎ씨가 고모, 삼촌한테 전화를 걸어 어떤 방법이 좋을지 물었다. “정말? 그것밖에 없대?” “…….” 아버지도, 고모도, 삼촌도 말문이 막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없었다. 결정을 해야 했다. ㅎ씨 가족은 결국 시시티브이로 임종을 지키기로 했다. “저희 가족 중에 기저질환자가 많아요. 아버지도 주기적으로 투석 치료를 받으세요. 또 초등학생인 어린 자녀가 있는 삼촌도 개인보호구를 착용하는 게 걱정이셨죠.” 환자 가족이 보호구를 하고 임종에 참관할 경우, 의료진 입회 아래 17가지 순서에 따라 엄격한 착·탈의 교육을 받는다. 그렇다 해도 보호구에 익숙하지 않은 비의료인으로선 복잡한 착·탈의 단계를 무리 없이 수행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차마 30분도 보기 어려웠던 ‘화면 속 임종’
며칠 뒤 ㅎ씨 가족들이 병원에 모였다. 6개월 만에 처음 할아버지를 보게 됐다. 지난 3월 요양병원에 입소한 할아버지와는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확진자가 본격적으로 증가한 3월부터 요양병원 면회가 금지됐기 때문이다. ㅎ씨 가족만 모인 보호자실 화면에 격리병실 시시티브이 영상이 들어왔다. 영상은, 병실 천장에 매달린 시시티브이 위치상 조망하듯 볼 수밖에 없었다. 화면은 눈앞에 있어도 화면 속 할아버지는 멀었다. 30분이나 지났을까. 가족들은 시시티브이를 그만 보기로 했다. 차마 더 볼 수가 없었다. “텅 빈 병실에 혼자 누워 계신 분을 보고만 있는 것도 고통”이었다. “의식도 없으신데 시시티브이로 봐서 뭐해, 무슨 의미가 있어….” 삼촌의 이 말은 임종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는 말이기도 했다. 임종이 ‘숨이 끊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죽음을 맞이하고 준비하는 의식’이라면, ㅎ씨 가족에게 ‘시시티브이 임종’은 이별을 준비하기엔 너무도 간접적이고 낯선 방법이었다. 환자와 가족이 서로에게서 고립되어 영상을 띄운 채 맞이하는 죽음. 이 생경한 모습의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임종 직전에는 의료진이 할아버지 휴대전화로 할아버지 얼굴을 찍은 10초 내외 영상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환자와 가족의 거리를 줄여보려는 의료진의 안간힘이었다. 이번엔 시시티브이로는 잘 안 보이던 산소호흡기가 보일 만큼 모습이 가까웠다.
할아버지를 시시티브이로 만나뵌 날로부터 약 일주일 뒤(9월17일), 의료진에게서 사망 연락을 받았다. 각자 집에서 대기하다가 병원으로 달려온 ㅎ씨 가족은 이전에 겪었던 마지막 작별과는 조금 다른 감정을 느꼈다. 우선, 의료진에 대한 고마움이다. “보통 병원에 계시다 돌아가시면 원망 섞인 마음이 들 수도 있잖아요. ‘조금만 더 신경 써주시지…’ 이런 마음. 그런데 이번엔 감사한 마음뿐이었어요. 의료진도 사람인데 왜 두려움이 없겠어요. 그럼에도 내 가족 치료해줘서, 끝까지 노력해줘서 고맙다고 말씀드렸어요.” 다음은, 장례 과정의 긴긴 당혹감이다. 방역당국은 유족 동의하에 코로나19 사망자를 화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ㅎ씨 가족도 ‘화장 원칙’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료시설→화장시설→장례식장으로 이어지는 ‘선 화장, 후 장례’의 세부 내용은 알지 못했다.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영구차에 유족이 함께 탈 수 없더라고요. 저희는 당연히 관습대로 영구차에 탄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유족은 개인 차량을 이용해 화장시설로 가야 했어요. 그때 지방에서 출발한 가족들은 빨리 오려고 기차를 탔거든요. 그런 줄 알았다면 자가용을 가져왔겠죠. 보건소나 지자체에서 안 그래도 정신없는 유족들에게 그런 정보를 미리 알리지 않은 게 아쉬워요.” ㅎ씨 가족들은 고인을 화장시설로 먼저 떠나보낸 뒤,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화장시설로 향했다. 무엇보다 염, 입관식을 생략하고 바로 화장시설로 고인을 모신다는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다. 당황의 연속이었다. “보통은 수의 입혀드리고(염) 관에 편안히 모신 걸(입관식) 확인해야 아, 이제 정말 이별이구나, 실감이 나잖아요. 그런데 이번엔 그런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돌아가신 게 실감이 잘 안 나는 거죠. 유골함 받고도 ‘이게 정말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인가’ 싶고….”
유족 ㅎ씨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사망자는 숨을 거둔 병상에서 150㎛ 두께 누출방지 의료용 비닐팩에 입고 있던 환자복 그대로 ‘밀봉’된다. 사후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고인이 입었던 환자복 등에 바이러스가 생존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비닐팩은 다시 ‘시신백’으로 한 번 더 감싼다. 코로나19 사망자는 ‘이중 밀봉’된 상태로 비로소 병실 바깥에 나오게 된다. 대기 중인 장례지도사 등 담당 인력이 고인을 안치실까지 모셔와 입관을 하면, 화장시설로 이동할 준비가 끝난 것이다. 이때, 장례지도사도 의료진과 똑같이 개인보호구를 하고 일한다. 유족들은 입관식도 할 수 없고, 입관 뒤 덮개가 씌
워진 관을 멀찍이 지켜보지만, 가까이 갈 수는 없다. 거리두기는 ‘사람과 사람’뿐 아니라 ‘죽은 사람과 산 사람’ 사이에도 유지된다. 고인을 중심으로 다시 사람과 사람 간 거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장례지도사들이 관을 모시고 안치실에서 나오는데, 할머니가 관 쪽으로 스르르 가시는 거예요. 관이라도 한번 만져보려고… 그러시면 안 된다고 말리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죠.”
시신은 사망한 당일 화장되었다. 현행법상 화장은 사망 후 24시간이 지나야 할 수 있지만, 감염병으로 사망한 경우 예외적으로 24시간 이내 화장을 할 수 있다. 화장시설에서 유골이 되어 가족 품에 안기면, 그때부터 고인은 비로소 ‘평범’해진다. 장례식장, 장지 선택에 제한이 없다. “평범한 장례식과는 다르게, 영정사진 옆에 유골함이 놓여 있었어요. 영안실에 계시는 것보다 가까이 저희 곁에 계셨을 거라고 믿어요. 그렇게 위안을 삼아요.” 소지품도 평범한 유품이 되려면 소독을 거쳐야 했다. “돌아가신 날 바로 병원에서 받았어요. 파란색 의료용 봉투에 휴대전화, 지갑, 양말 몇개 들어 있었어요. 별게 없더라고요.” 할아버지는 생전에 봉안을 원하지 않았다. 화장한 뒤 ‘산골’(지정된 장소에 골분을 뿌리는 일)해달라고 하셨지만, 남은 가족 마음이 그렇게 되질 않았다. “수의도 못 입혀드리고 보내는데 (유골함도 없이) 어떻게 뿌리기까지 하겠어, 아버지가 그러세요. 버티실 수 없었나 봐요. 그렇게 멀리 보내드리기엔….” 결국 ㅎ씨 가족은 할아버지를 한 봉안시설에서 자연장(골분을 수목·잔디 밑이나 주변에 장사)으로 모셨다. 할아버지를 흙에 모신 그날 이후로도 애도의 시간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가족들 모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어요. 장례지원 절차 알아보려고 구청 갔다가, 주민센터 갔다가, 요양원 직원이랑 통화했다가, 요양원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변호사랑 통화했다가, 여전히 정신없이 지내고 있어요.” 코로나19 사망자의 가족은 국가로부터 장례비용(100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ㅎ씨 가족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먼저 찾아보고서야 사망자 주소지 관할 주민센터를 통해 장례비용을 신청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주민센터에 갔더니 그제야 지원 항목을 찾아보기 시작하는 거예요. 사망 전까지는 의료기관이 전면에 있지만, 사망 이후 절차는 지자체가 진행하잖아요. 의료기관에 비해 지자체는 사망자가 나올 경우 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지자체에서 코로나19 사망 시 어떤 지원과 절차가 있는지 따로 매뉴얼을 만들어서 제공하면, 가뜩이나 특수한 상황에 지친 데다 고립감을 느끼기 쉬운 코로나19 유족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속수무책 ‘워킹 뉴모니아’…종잡을 수 없는 코로나
ㅎ씨 할아버지가 서울의료원에서 숨을 거두기 나흘 전인 9월13일, 인천의료원도 그 어느 때보다 긴장이 높았다.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9월17일에는 2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불과 나흘 만에 사망자 3명이 나온 것이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70대 고령 환자였으며, 확진 시기가 8월 말로 비슷했다. 국제공항이 있는 인천지역 공공병원으로서 ‘방역 관문’ 역할뿐만 아니라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를 처음 고안하는 등 방역에 선도적 구실을 해온 인천의료원은 국내 첫 확진자(1월20일)를 포함해 모두 649명(10월13일 기준)의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해왔지만, 사망자가 발생한 시기는 이때가 유일했다.
지난 6일 오후 인천의료원 국가지정음압병동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 격리병실에 식사와 가족들이 보낸 물품을 들여보내고 있다. 인천/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지난 6일 코로나19 환자를 돌봐온 인천의료원 간호사 ㅁ씨와 의사 ㅇ씨를 만났다. 그들은 “의료진보다 환자와 유족에게 관심을 더 가져달라”며 직책과 실명 공개를 원치 않았다. ㅁ씨는 30년 경력의 간호사이며, ㅇ씨는 24년 경력의 의사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 베테랑 의료진에게도 ‘코로나 임종’은 잊기 어려운 장면이다. “시시티브이 대신 격리병실 유리문 밖에서 직접 환자를 보신 보호자가 기억나요. 개인보호구 착용하시고요. 병실 안으로 말이 전달되지 않으니까, 유리문에다가 수성 매직으로 마지막 인사를 쓰셨어요. ‘힘내세요’ ‘사랑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스케치북이나 종이에 써서 유리문에 갖다대기도 하시고요. 손으로 하트를 만들거나, 눈짓 손짓 발짓 할 수 있는 건 다 하셨어요.”
임종 전 면회도 비대면이다. 코로나19 환자와 가족은 병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데다, 여느 중환자실처럼 면회 시간이 길지도 않다. 이 얼떨떨한 면회를 준비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오래 못 봐서 반갑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서 막 서두르실 거 같죠? 아니더라고요. 보호구 착용법을 세심하게 알려드리면, 굉장히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입으세요. 정말 잘 협조해주셨어요.”(간호사 ㅁ씨) 서울의료원과 마찬가지로 인천의료원 의료진도 환자 사진을 찍어 가족들에게 전해주곤 한다. “살아 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보길 원하시거나, 가족이 격리 중이어서 병원에 오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할 수 있는 데까지 심리적인 면을 도와드리는 거지요.”(ㅁ씨) 의사 ㅇ씨는 코로나19 환자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워킹 뉴모니아(폐렴), 해피 하이폭시아(저산소증)’를 꼽았다. “산소포화도가 낮은데도 불편함을 잘 못 느끼거나(‘해피 하이폭시아’) 엑스레이 찍으면 폐가 염증으로 하얀데도 밥도 잘 드시고 잘 움직이시고(‘워킹 뉴모니아’) 그러다가 훅 나빠지는 경우가 있어요. 다른 병원 케이스를 보면, 격리병실에서 푸시업도 하고 운동도 할 만큼 활동적인 환자도 계세요. 그러다 갑자기 상태가 중해져서 돌아가신 거예요. 의사로서 환자를 떠나보내는 경험이 아주 낯설지는 않아요. 하지만 코로나19 치료와 임종 과정은 훨씬 예측이 어렵고 속수무책이랄까요.” 방역의 목적은 한 사람이라도 더 생명을 구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사람이라도 더 ‘인간적인’ 죽음을 맞도록 하기 위함은 아닐까. 16일 현재 국내 코로나19 확진자의 치명률은 1.76%다. 그러나 “가족은 언제나 100%다. 숫자로 쪼개고 나눌 수 없다.”(김탁환 <살아야겠다>) 작은 숫자에 가려진 “애도를 허락하지 않는”(유족 ㅎ씨) “속수무책”(의사 ㅇ씨)의 죽음들이, 우리가 잊고 있던 방역의 또 다른 목적을 묻고 있다.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다른 유족께 가닿길 바라는 위로의 마음과 감염 확산 방지에 대한 간절함으로 인터뷰를 해주신 ㅎ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환자의 존엄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노력한 경험을 나누어주신 인천의료원 의료진과 도움말을 주신 오명돈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김준혁(의료윤리학자·치과의사), 박중철(교수·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양수진(장례지도사), 이철영(교수·동국대 불교대학원 생사문화산업학과), 추혜인(의사·살림의원)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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