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민: 초청자, 참석자, 부재자>
“소리는 음악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인가?
꼭 소리가 있어야만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가?”
오민(b.1975-)은 어린 시절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훈련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음악의 언어와 구조를 작업에 대입해 연주자의 움직임과 무용가의 움직임, 무대의 안과 밖의 모습을 그만의 시선으로 표현해왔다. 오민의 작업 세계는 미술이 아닌 피아노 연주와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을 근간으로 한다.
그동안 음악의 보편적인 구조를 활용해 불안의 감각을 다루거나 연주자로서의 태도와 규칙 등을 주제로 작업을 이어왔던 그가 이번엔 음악의 본질적인 요소에 집중한다. 음악의 구조와 형식을 작업의 주요 소재로 다루는 것에 더 나아가 ‘듣기 힘든 소리 혹은 들리지 않는 소리’를 주제로 음악의 범주 자체를 확장한다.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업 ‘초청자’, ‘참석자’, ‘부재자’는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작품이 제작된 순서는 ‘부재자’에서 ‘참석자’와 ‘초청자’로 이어지지만, 전시 제목은 이를 역순으로 나열했다. 각각 독립적인 작업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부재자’는 ‘참석자’와 ‘초청자’의 기반이 되고, ‘참석자’는 ‘초청자’의 일부로 구성된다. 그리고 작업을 위해 작가가 창작한 스코어를 함께 내놓는다.
‘부재자’는 오민이 작곡가 문석민에게 듣기 어려운 혹은 들리지 않는 소리를 작곡해 줄 것을 의뢰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 작업은 ‘듣기 어렵거나 소리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음악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했다. 오민은 협업을 위해 다섯 가지 종류의 관계를 구성해 제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들리지 않거나 듣기 힘든 소리를 위한 다섯 곡의 음악을 완성했다.
이렇게 완성된 ‘부재자’를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 작품이 ‘참석자’다. ‘참석자’는 음악을 둘러싼 공간과 시간, 그리고 음악을 듣는 방식에 관한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오민은 소리를 진동, 즉 움직임이라고 설명하며 동시대 음악이 보이지 않는 진동에서 보이는 진동으로 재료를 확장 중이라고 가정한다. 그리고 이 가정대로라면 “음은 이미지와 운동감으로, 악기는 신체로, 연주는 입체적 수행으로 확정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의도적으로 소리를 듣기 어렵게 만든 ‘부재자’를 연주하는 각각의 연주자들은 자신만의 규칙을 생성해 듣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완주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이는 결국 영상을 통해 드러나게 되고, 관람객은 이런 미묘한 움직임을 통해 소리를 유추할 수 있다. 작가는 관람객이 악기에서 발생하는 소리가 아니라 움직임(진동)과 시공간을 통해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한다.
갤러리 2에서 ‘참석자’와 함께 상영되는 ‘알렉세이’는 ‘부재자’의 콘셉트, 디렉션을 위한 스코어이자 훈련을 위한 연습곡이다. ‘알렉세이’는 ‘부재자’를 관통하는 개념을 탈바꿈하기 위한 실험으로, ‘부재자’를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개념을 음악 언어에서 보편 언어로 그리고 다시 보편 언어에서 움직임 언어로 치환한 작업이다. 들리지 않는 소리 혹은 듣기 힘든 소리에 익숙해지기 위해 눈과 귀를 훈련하는 작업을 병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초청자’는 ‘참석자’를 상영하기 위해 제작한 가벽을 계속해서 움직이며 여러 형태의 관계들을 의도적으로 발생시키는 퍼포먼스로, 음악 연주자의 신체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질문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초청자’는 영상의 상영과 그 영상 설치를 전환하는 두 개의 막으로 구성됐다. 1막은 ‘부재자’의 구성에 따라 다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음 장으로 전환되는 순간에 2막의 장이 교대로 삽입되며 전개된다. 1막과 2막은 여러 면에서 대조되지만, 두 개의 막이 어떻게든 서로의 영역을 가로질러 교류하는 것을 의도해 작품을 제작했다.
이는 연주자 간의 관계, 시간과의 관계, 관객과의 관계 등 관람하는 시간 동안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관계들을 형성하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컨대, 장이 전환되는 순간마다 관객들은 계속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직면하게 된다. 이는 최종의 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안의 감각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을 해야만 하는 연주자의 경험과도 유사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년에 진행했던 퍼포먼스의 도큐멘테이션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초청자’, ‘참석자’, ‘부재자’를 위해 창작한 스코어들도 함께 전시된다. 오민의 스코어는 오선보와 음자리표 등 악보를 상상하면 떠오르는 보편적인 음악 기호들이 아니다. 직선과 곡선, 문자, 화살표, 도형, 이미지와 같은 다양한 형태들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그래픽 악보라 불리며 실제로 악보를 그리는데 활용되는 형식이다.
그래픽 악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 음악가들을 포함한 여러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에 의해서다. 그래픽 악보는 전통적인 서양 음악의 구조적 틀에 의존하지 않고 악기의 음높이, 음길이, 음색 모두를 연주자의 결정에 따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한 마디로 ‘악보를 도식화한 것’이다. 존 케이지, 모턴 펠드먼, 얼 브라운, 백남준, 트리샤 브라운,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 등이 이를 활용한 대표적인 예술가다.
오민은 스코어를 다양한 용도로 활용했다. 다섯 곡을 구성하는 것, 조명이나 벽의 등장 등 움직임을 기재하는 것, 초청자를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까지 모든 작업 과정이 스코어로 연결돼 있다. 그리고 작업 과정에서 생겨난 여러 질문들을 정리하는 역할 등으로 사용했다. 이번 작업을 구성하고 디렉션 하기 위해 만든 스코어 리스트와 협업 및 창작을 위해 창작한 스코어, 타임라인-수행 플랜-플로어 플랜, 개념 다이어그램, 이미지 기록, 테크 라이더, 텍스트, 질문 등이 모두 전시된다.
“답을 내놓든 내놓지 않든,
한 질문은 쉬지 않고
또 다른 질문을 낳으며
회전하고 확장한다.”
작가가 던지는 질문들은 사실 답을 구하기 위한 질문이라기보다는 계속 발생하는 궁금증 사이에서 사유를 확장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처음부터 정확한 하나의 답으로 귀결될 수 없다고 전제된 질문은 그 작품을 마주하는 관객에 따라 다른 결과에 도달하게 한다. 때문에 오민의 작업은 보편적인 음악이 부재한 상태에서 음악을 보고 듣도록 유도한다. 결국 ‘초청자’, ‘참석자’, ‘부재자’는 소리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해 신체, 움직임, 공간 등에 관한 질문으로 확장하고 있다.
한편, ‘초청자’, ‘참석자’, ‘부재자’에서는 소리를 중심으로 작업을 이어나갔다면, 이번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플랫폼엘의 다목적홀 플랫폼 라이브에서 선보일 신작 공연 ‘412356’에서는 시간을 다룬다. 더 정확하게는 ‘지금, 여기’, 즉 현재를 의심하며 ‘시간의 구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오민 작가의 신작 퍼포먼스는 오는 9월 5일 저녁 7시 플랫폼 라이브에서 진행된다.
오민: 초청자, 참석자, 부재자>
2020.07.31. - 2020.09.27.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화~일 11:00 - 20:00 (월요일 휴관)
일반 8,000원 / 청소년, 우대 6,400원
사진 및 자료 |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August 21, 2020 at 08:19AM
https://ift.tt/2E33vE5
듣는 음악 아닌 보는 음악…피아노 전공한 작가가 '이것'에 집중한 이유는? - 경향신문
https://ift.tt/3ffJW8k
Bagikan Berita Ini
0 Response to "듣는 음악 아닌 보는 음악…피아노 전공한 작가가 '이것'에 집중한 이유는? - 경향신문"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