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엘서 '초청자, 참석자, 부재자' 개막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미국의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1912~1992)는 1952년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파격적인 곡을 발표했다. 피아니스트가 4분 33초 동안 한 번도 건반을 두드리지 않고 앉아있다가 퇴장하는 '4분 33초'라는 작품이다.
음악은 무엇인가. 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소리는 음악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인가.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오민 개인전 '오민: 초청자, 참석자, 부재자'는 이런 질문에서 시작됐다.
오민은 전시와 음악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을 완전히 뒤엎는다. 들리지 않는 소리, 듣기 어려운 소리로 만든 음악을 관객이 보도록 함으로써 고정관념을 깬다.
전시는 세 가지 작업으로 구성됐다. 듣기 어려운 소리를 재료로 만든 다섯 곡이 '부재자'이다.
오민은 작곡가 문석민에게 의뢰해 존재하지 않는 소리, 있는 것으로 가정될 뿐 실제 발생하지 않을 소리, 다른 소리를 통해 유추해 들어야 하는 소리, 소리가 나는데도 잘 들리지 않는 소리, 이 모든 것이 엮여 총체적으로 듣기 어려워진 소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참석자'이다. '초청자'는 관객들이 '참석자'를 보는 퍼포먼스다.
연속적인 작업이지만, 전시장에서 보게 되는 핵심 결과물은 '참석자' 영상이다.
지휘자는 쉬지 않고 지휘를 하지만, 악기 소리를 듣기 어렵다. 연주자들은 가만히 악보를 눈으로 따라간다. 연주 동작을 취해도 상상하던 아름다운 선율이 아니라 허공을 가르는 움직임 소리만 들릴 뿐이다. 가끔 악기에서 인상이 찌푸려질 만큼 듣기 싫은 소리가 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연주자들은 어떻게든 소리를 내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한다. 관객은 정적 속에서 들리지 않는 연주를 눈으로 지켜보며 그동안 몰랐던 소리의 감각을 느끼게 된다.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보도록 유도하는 실험적인 전시는 피아니스트 출신이라는 작가의 독특한 이력에서 출발했다.
오민은 서울대에서 피아노와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고, 예일대에서 그래픽디자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과 암스테르담을 오가며 활동하는 그는 영상과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미술과 음악, 무용이 만나는 작업을 해왔다. 특히 소리로 듣는 음악을 넘어 눈에 보이는 음악에 집중하며 시간과 공간, 몸, 움직임, 소리, 이미지의 관계를 탐구했다.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송은 미술대상 우수상, 두산연강예술상 등을 받으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음악이란 소리가 시간 안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을 때 만들어진다"라며 "그런데 소리가 반드시 물리적으로 발생해야 들리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쉼표도 소리일 수 있고,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음악도 있다. 악기가 아닌 연주자들의 움직임에서 나는 소리도 있다"라며 "그 자체를 소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움직임이 있으므로 소리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질문했을 때 예상치 못한 발견을 하게 된다"라며 "즐거움과 편안함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것을 보고 불편해지게 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9월 27일까지.
doubl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20/08/09 09:00 송고
August 07, 2020 at 03:26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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