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0만광년 떨어진 ‘편광’ 관측 성공
블랙홀 주변 자기장 존재 증거
양극단 방출 제트현상 원인 밝혀
이번 관측에 참여한 전파망원경 집합체인 밀리미터·서브밀리미터간섭계(ALMA). ESO(유럽남방천문대) 제공
천문학자들이 블랙홀 주변의 편광 관측을 통해 블랙홀이 물질을 빨아들이고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메커니즘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2년 전 인류 역사상 최초로 블랙홀의 모습이 공개된 데 이어 블랙홀의 비밀 해독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된 것이다.
한국을 포함해 미국, 유럽, 일본, 남미, 아프리카 등의 연구자로 구성된 ‘사건지평선망원경(EHT)’ 국제공동연구팀은 M87 은하 중심부에 있는 초대질량 블랙홀에서 편광을 처음으로 관측하고 영상을 공개했다. 이 블랙홀은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5500만 년 이동해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연구 결과는 천체물리 분야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저널 회보’ 24일(현지 시간)자에 두 편의 논문으로 게재됐다.
통상 빛으로 표현되는 전자기파는 다른 영향이 없다면 360도 모든 방향으로 진행한다. 이때 외부에서 강한 자기장이 영향을 주면 한쪽 방향으로만 정렬된 전자기파가 나오는데 이를 편광이라고 한다. 편광이 관측되면서 블랙홀 주변에 거대한 자기장의 존재도 확인된 것이다. 이를 통해 블랙홀에서 방출되는 물질이 360도로 뿜어져 나오지 않고 양극단으로만 방출되는 ‘제트’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도 밝혀졌다.
처음 모습 드러낸 블랙홀의 소용돌이 천문학자들이 초대질량 블랙홀에 나타난 편광을 처음으로 관측해 영상(아래쪽 사진)을 공개했다. 초대질량 블랙홀은 지구에서 5500만 광년 떨어진 M87 은하 중심에 있다. 편광은 빛이 한쪽 방향으로 진행되는 현상을 말한다. M87 은하 중심 블랙홀 가장자리 영역의 편광이 드러나 있다. 사진 아래쪽 나선형의 밝은 선들이 편광의 방향을 직접 보여준다. 편광은 블랙홀 가장자리 강력한 자기장의 영향으로 생겨난다. 강력한 자기장은 에너지를 양쪽 방향으로 강력하게 뿜어내는 ‘제트’를 만들어낸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이번 연구를 수행한 연구진이 2019년 4월 같은 블랙홀의 관측 영상을 인류 최초로 공개한 것으로, 당시 영상엔 편광이 드러나 있지 않다.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블랙홀은 극도로 압축돼 우주에서 가장 빠른 빛조차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중력이 강한 천체를 말한다. 대부분의 물질은 블랙홀의 강한 중력에 빨려 들어가지만 일부 물질은 튕겨나가 우주공간으로 강하게 분출된다. 그런데 블랙홀 주변에 강력한 자기장이 있기 때문에 물질이 모든 방향으로 퍼지지 않고 양쪽 일직선 방향으로만 흐르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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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HT 이론연구그룹 연구책임자인 제이슨 덱스터 미국 콜로라도볼더대 교수는 “블랙홀 주변의 뜨거운 가스 일부는 강한 자기장의 압력으로 블랙홀 중심의 강한 중력에너지를 이기고 밖으로 밀려 제트의 형태로 날아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자기장의 존재와 방향은 블랙홀의 에너지 흡수와 방출 정도도 설명할 수 있다. 블랙홀의 중력과 자기장의 방향이 같다면 보다 강한 힘으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반대의 경우에는 밖으로 밀려 방출된다. EHT는 스페인과 미국, 남극, 칠레 등 지구 전역에 흩어진 8대의 전파망원경을 하나의 큰 전파망원경처럼 구현했다. 동시에 천체를 관측하면 마치 하나의 거대한 망원경으로 본 것처럼 해상도가 높아진다.
EHT 연구팀에는 한국천문연구원과 해외 기관에서 총 14명의 한국 연구자가 참여하고 있다. EHT 한국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손봉원 천문연 책임연구원은 “천문연이 보유한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을 활용해 관측하고 있다”며 “자기장의 구조와 주변 물질의 특성 등에 대해 추가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r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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